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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게임 살아오는 것에 한계를 느낍니다. 지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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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9-12 04:31 조회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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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게임 살아오는 것에 한계를 느낍니다. 지치네요

안녕하세요. 털어놓을 곳도 없고 답답한 나머지 판까지 오게 되었네요..
저는 21살이예요,,,지금까지 살아 온 시절을 돌이켜보니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정도이기도 하네요


아빠는 22살, 엄마는 19살 때 저를 낳으셨어요.
친엄마는 교회에 빠져 아빠가 벌어오는 모든 돈을 교회에 받치셨대요. 제 분유값도 안남기고 말이죠. 뒤늦게 알아챈 아빠는 제가 4살 때 이혼을 하셨고 친엄마랑 외가쪽들은 저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지만...자기 핏줄을 어디에 보내냐며 저를 데려와 끝까지 키워주신건 할머니, 할아버지 였습니다.
저를 먹이고, 입히고, 교통비, 용돈 등등 그냥 자식처럼 모든 걸 받쳐가며 키워주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때까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다가 아빠는 어디 나가신다며 겨울 때쯤 집을 나가셨어요..
그 당시 이유는 몰랐죠.
그리고 초등학생 6년이 되던 해, 저희 할머니의 어머니이신 증조할머니께서 고령의 연세로 인해 세상을 떠나셨고 아빠는 이런 곳에 있으면 교육상으로 안좋다며 저를 돌봐줄 사람이 있으니 그곳으로 데려다준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따라간 곳은 작은 원룸이였고 그곳엔 처음보는 여성분이 계셨습니다. 아빠랑 동거하던 여성분이셨고 저에게는 설명하나 없었죠. 시간이 지나고 그 이후에도 만남을 가졌습니다. 아빠는 어느순간 그 여성분에게 제가 엄마라고 부르기를 요구했고 저는 원치 않았습니다.
새엄마에게 조금 편해졌을 때 물어보니 새엄마도 아빠에게 딸이 있었다는 걸 저를 처음 봤을 당시 알았다고 하네요

아빠는 제가 중학생 1학년이 됐을 당시 새엄마랑 아빠 사이에 애기를 낳으셨고 그 애기는 저에게 이복동생이였습니다. 아, 물론 아빠랑 저는 쭉 따로 살았구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제가 고등학생 3학년이 되던 해, 저를 키워주시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과도한 음주와 담배로 인해 심근경색이라느누질병이 생기셨고 시술도 하셨지만 외출을 하시고서는 밖에서 돌아가셨죠.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며 두분 역시 많이 싸우셨어요..저는 어릴 적부터 폭력을 많이 보고 자라서 할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는데 막상 그런 현실이 닥치니 사람이 멍해지더군요..너무 놀라서 눈물이 안나온다는 걸 그 때 처음 느꼈습니다.

그 당시 교도소 계시던 아빠도 중간에 나와 같이 장례식장에 있었구요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두달전쯤 가정폭력으로 교도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새엄마를 보면 팔이나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을 때가 많았고, 아빠는 새벽에도 서슴없이 여자에게 담배심부름을 시키고는 하셨죠. 과거에 한번 신고 당하셨다가 합의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도 아빠를 피하려고 밖에 나온 새엄마에게 연장을 들고서는 새엄마를 쫓아갔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피하려다가 새엄마는 계단으로 구르셨구요. 심지어는 애기도 같이 굴렀다고 하네요(새엄마가 안고 있어서 다치진않았습니다)

그걸 본 주민이 신고를 해주고 아빠는 6개월동안 교도소에 들어가계셨습니다.
저에게도 편지를 써주시더군요ㅋㅋ내용은 아빠가 교도소에 들어가있어 저에게 미안하다며 새엄마도 잘못이 있다며 본인이 억울하니 저보고 탄원서를 써달라는 내용이였습니다...그 당시엔 뭣모르고 써줬는데 지금 생각하니 후회되네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출소한 아빠가 저를 만나서는 제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달라고 하더군요
아빠가 출소 했을 당시 저는 취업계로 빠져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급여통장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이 가능했었어요
교도소 출소 후에 본인명의로는 통장을 못 만드니 저보고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말로 대포통장이라고 하죠?
그 당시에 저는 대포통장이라는 것도 몰랐고 직원들하고 술자리에서 수다를 떨던 중 그게 대포통장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철이 없던 저는 아빠돈에 손을 댔고 그거에 화가 난 아빠는 저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둥 인연을 끊듯이 연락이 왔고 그 뒤로는 지금까지 연락해본적이 없네요


작년 7월말쯤 뇌출혈로 쓰러지신 할머니는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으셨고 다행히 깨어나셔서 현재는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말은 못하시구요
저는 혼전임신으로 아이를 낳아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어요 임신사실을 알리자 너무 좋아하는 할머니를 보니 아이를 지울수가 없었는데 임신 중기가 되고 나서 할머니는 너무 일찍 편찮으셨어요...

시아버님의 욕설, 다혈질적인 행동들과 대놓고 바람피시고...시어머니가 약간의 장애가 있으시고 시아버님을 무서워하셔서 한마디도 못 따지시는 데 그러다보니 시아버님은 대놓고 바람피시고 심지어 시아버님이 바람피시는 아줌마 딸들도 진짜 아빠라도 되는 것마냥 시아버님한테 반말...
큰어머니도 시어머니처럼 행동하시고 시어버님은 저한테 쌍욕도 하시고..그런게 반복되다보니 너무 지쳐 합가한 지 한달도 안되서 저는 애기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남편도 따라나왔고 2주정도 모텔에서 생활하다가 정부지원으로 100만원 가량되는 돈을 받고 원룸을 구해 살고 있는데 새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기쁨도 있지만 일용직하는 남편을 보니 한편으로는 대견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있네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든 살다보면 되겠죠?
이렇게 살면서 할아버지 담배 심부름, 술심부름 초등학생때부터 해왔어도 저는 지금까지 담배도 입에 안대고 나름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표현을 안했던 탓일까요..
이젠 너무 지치네요

퍙소엔 힘들다는 표현한번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요즘들어 한계가 오는 것처럼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물론 아이를 보면 너무 행복하지만...

이렇게 글로나마 털어놔도 되는 거겠죠?
저보다 힘든 분들도 많은데 제가 괜히 어리광부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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